내다 놓으면 다시 살아나는, 틈틈이의 이름 모를 식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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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틈이 되는 어떤 순간, 장소,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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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선생님, 두고 가시는 길을 배웅하며
_글 이연희(미카) 줌마네 글쓰기반 2기. 글 쓰고 사진 찍는 자유기고가
2006년 줌마네에서 사진가 박영숙 선생님을 초빙하여 사진 수업을 열었고 나도 그 수업에 참여했다. 첫 시간, 선생님께선 우리에게 사진을 배우려는 이유가 뭐냐 물으셨다. 풍경을, 가족을, 음식을, 여행지를 잘 찍고 싶어서…. 다들 사진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가 비슷했고 내 생각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선생님께선 열 대여섯 명 되었던 우리들 얘기를 다 듣지 않고 중단하셨다. 그러곤 수업을 통해 사진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초급과정에서는 이론과 실기가 병행됐다. 이론 수업 때 선생님은 문학적으로 사진을 설명하셨다. 예를 들어 프레임은 문장이며, 피사체는 주어, 셔터스피드는 동사, 조리개는 형용사라는 식으로 설명하셨다. 심도를 설명할 때도 그것을 달리해야 하는 이유를 글에 비유하며 알려주셨다. 숫자만 보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나는 선생님의 설명이 흥미로웠고, 사진 메커니즘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실기 수업은 도제 방식과도 같았다. 선생님은 디지털카메라보다는 필름카메라를 준비케 하셨고, 카메라 잡는 법부터 초점과 노출 맞추기 등을 일일이 알려 주셨다. 자상하셨지만 또 엄격하셨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초급과정이 끝나고 중급과정에서는 선생님께서 내주신 숙제를 가져가면 그것을 함께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형태 찾기, 같은 물체이면서 빛에 따라 채도가 달리 보이는 것 찍기, 시간을 프레임에 담기, 흑백사진 찍기 등이 숙제였다. 숙제를 내주신 의도에 맞게 찍어갈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같은 주제의 숙제가 다시 주어졌다. 다시, 다시, 다시. 익혀가는 과정은 지루하기도 했다. 내가 기대했던 사진 수업은 이게 아닌데, 예쁜 사진 쉽게 찍는 법을 가르쳐주실 것이지 이게 뭐라고 이런 숙제를 주시나, 속으로 궁시렁 거린 적도 있었다. 선생님께서 제대로 찍었다고 하신 사진들도 하나 같이 ‘쓰레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숙제하는 동안 물체를, 장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훈련이 되었고, 그것을 통해 시각적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을. 또한 쓰레기 같았던 사진들이 있었기에 제대로 된 사진도 있게 되었다는 것을.
사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있었다. 사진에 생각을 담으라는 것. 사진으로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를 고민케 하셨는데 별생각 없이 사진을 배워보겠다고 했던 나에게 선생님의 가르침은 어렵기만 했다. 담고 싶은 얘기도, 사진으로 하고 싶은 얘기도 없는데 무얼 표현하란 말인가, 답답하고 답답했다. 수업이 끝을 향해 갈 때까지 고민만 깊었다. 그러다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서 무의식 안에 똬리 틀고 있던 과거를 바라봤고 그것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이미지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선생님께선 잘했다며 반가워하셨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선생님께선 내가 하고자 한 이야기를 읽어내셨던 거다. 떨떠름하면서도 뿌듯했다.
선생님께 배운 건 사진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때 우리는 마흔 안팎의 삶을 살고 있었다. 개인으로써의 ‘나’보다는 누구의 무엇으로 불리어졌고, 어떤 것을 시작하거나 지속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라는 것에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선생님께서는 ‘너희는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고, 무얼 해도 할 수 있는 나이’라며 응원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듣는 그 응원은 주술과도 같아서 우리는 선생님 앞에서 찧고 까불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감도 갖게 됐다. 웃음이 많아졌고, 새로운 일을 의뢰받았을 때 두려워하기보다는 해보자며 용기를 냈다.
몇 년 전이었다. 나는 나이 오십을 앞두고 조금, 아니 꽤 우울했다. 50이 넘으면 늙는 일밖엔 없을 것 같아서였다.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언니’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박영숙 선생님께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사진전을 여신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시 제목은 ‘두고 왔을 리가 없다’였다. 그보다 과거에 하셨던 작업인 ‘미친년 프로젝트’가 중년 여성들의 자기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갈등, 회복을 다루었다면 ‘두고 왔을 리가 없다’는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미친년 프로젝트’에 비해 ‘두고 왔을 리가 없다’는 의외였다. 선생님의 카메라에 담긴 여성 중엔 기업 대표의 아내처럼 여성주의 관점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도 있었다. 작가와 대화하는 시간에 그에 관해 질문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그런 질문을 받을 줄 알았다는 듯 웃으셨다. 선생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셨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전시를 보면서 늙는 일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선생님 사진 속 피사체들은 80-90대인 여성들이었으나 현역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도 숨기지 않았고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욕망도 내려놓지 않았다. 여전히 꿈을 꾸었고 늙음은 절망이 아니라 현재진행 중인 삶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현재를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당시 70대였던 박영숙 선생님 또한 그들을 촬영하면서 현재진행형인 선생님의 삶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희망하셨을 거라 짐작했다. 몇 년이 지난 뒤 ‘그림자의 눈물’ 전에서 한 번 더 뵈었을 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 보였지만, 여전히 작업 구상을 하고 계신 선생님이 반가웠다. 그리고 ‘두고 왔을 리가 없다’의 모델들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를 들고 계시길 기대했다.
줌마네 사진 수업의 모든 과정을 마치던 날. 선생님께서는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다 가르쳤어. 지금부터는 너희들 몫이야. 더 배우고 익혀서 다른 사람들에게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도록 해.”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선생님께서 우리를 과대평가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럴만한 주제도 되지 못하는데 무얼 알려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선 우리를 과대평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신 것 같다.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씨앗을 키울 가능성을. 나는 여전히 그 씨앗을 안고는 있다. 얼마쯤 싹을 틔운 것도 같다. 함께 사진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도 선생님께 받은 씨앗을 아직 품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으므로 선생님이 두고 가신 그 씨앗의 싹을 틔울 노력을 하겠지. 두고 가신 마음이 쓸쓸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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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줌마네 <박영숙의 사진강좌> 수업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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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에서 열리는 모임과 프로그램 소식들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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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3개월간 진행된 틈틈이 공부방의 인기 수업 ‘목요글쓰기’가 11월 13일 원데이 클래스로 열립니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기꺼이 ‘쓰는 사람’으로서의 루틴을 만들기 위한 입문 수업. 애쓰지 않고 평온하게 일상의 한 조각을 글로 옮기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매일의 조각들을 수집하듯 무심하게 글쓰기를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글들이 차곡 차곡 쌓이고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도 깊어집니다. 나다운 글쓰기 입문 수업 ‘목요글쓰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목요글쓰기 _ 원데이클래스]
▫️안내자| 이숙경(오솔)
▫️일 시|11월13일(목) 오전반 AM10:00~12:00 저녁반 PM7:00~9:00
▫️장소|틈틈이(마포구 성미산로 7안길 20, 1층)
▫️정 원|9명 참가비|3만원 (줌마네회원 2만원)
▫️참가신청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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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9.30 (화) 한끼모임
9월의 마지막 날, 뜨거운 여름 지나 다시 열린 한끼모임. 요새 들판에는 코스모스가 지천이라며 짱아가 꽃 한 다발을 가져왔어요. 화사한 코스모스와 든든한 밥 한끼, 틈틈이를 찾아준 분들 덕에 가을의 활력을 듬뿍 얻는 날이었습니다.
이날의 밥상 역시 제철요리 고수 김치 님이 준비해 주었는데요. 너무 맛있어서 숟갈을 놓지 못하고 두번 세번 리필해 먹은 차돌박이 버섯밥과 냄새만으로도 공간을 휘어잡은 구수한 된장국, 가지런히 입맛 돋우던 쪽파. 그리고 메뉴에도 없던 이날의 킥!은 바로 두부구이와 산초열매였습니다. 김치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함께 비슷한 듯 다른 산초와 제피를 맛보며 각자의 취향을 알아가고, 농부 짱아가 올해의 햇포도로 직접 담근 단 한 병의 와인을 한잔씩 나눠 마시는 시간이 참 귀하게 다가왔어요.
생산자로서 자리잡아가는 농부 짱아의 '아주작은 채소가게'에서는 제철농산물과 바질페스토, 허브레몬코디얼, 검은찰옥수수차를 선보였는데요, 완판에 예약까지 이어졌답니다. 한끼모임에 함께한 오체만족팀과 줌마네의 오랜 멤버들, 종종 들러주시는 동네 감독님과 친구들, 인스타 이웃님, 10월부터 틈틈이 공간을 쉐어하게 된 동네 작가님까지. 멀리서, 또 가까이서 시간 내 오신 분들과 함께해 더욱 든든한 하루였습니다. 다음 한끼모임은 11월 3일에 열립니다.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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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선흘포럼: 만물이 돕는 세계]
10월 22일과 23일 화요일과 수요일, 제주 선흘마을에서는 희수를 맞은 두 페미니스트,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와 한국의 인류학자 조한혜정의 특별한 포럼이 열립니다. 서간집 <경계에서 말하다(2004, 생각의나무)> 이후 두 사람이 따로 또 함께 걸어온 페미니스트적 연구와 실천, 지성과 지혜를 나누고, 공생사회로의 모색을 하며 동아시아 페미니즘의 역사와 전망을 살피는 오픈포럼입니다. 연계행사로 선흘 할망들의 그림전시가 열리고 온라인으로도 함께 진행되니 관심 있는 분들 놓치지 말아요!
▫️오픈포럼1: 10월 22일 (수) 오전10:30-12:30 <말은 가닿을까? ことばは届くか: 우에노와 조한의 2003년 교신, 그리고 동아시아 페미니즘>
▫️오픈포럼2: 10월 23일 (목) 오전10:30-12:30 <돌봄사회의 비전과 페미니스트 실천>
▫️ >>자세히 보기 >>참가신청 바로가기
[2025 폴포크 fall folk]
가을의 제주에서는 특별한 포크 축제가 열립니다. 해지는 가을 저녁, 반짝반짝 지구상회에서는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고 서로의 온기로 따뜻할 겨울을 기다리며 5번의 공연을 합니다. 싱어송라이터 김목인님과 장들레, 여유와 설빈,이아립, 권나무 아티스트들의 공연과 함께 제주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온기를 나눠보는 건 어떤가요?
▫️11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반짝반짝 지구상회(제주시 한림읍 귀덕6길 192) >> 예매 링크
[만연사 명상음악회]
10월 18일 토요일, 전남 화순에 있는 아름다운 절 '만연사'에서는 [소란이 새어들지 않는 곳]이라는 매력적인 이름의 명상음악회가 열립니다. 만연사는 당대 명창인 임방울, 이동백, 이날치, 정광수 등이 소리를 익히고 가르치던 곳으로, 해마다 산사음악회를 열고 있다고 하는데요. 범종 타종부터 괘불탱화 공개 퍼포먼스, 행선스님의 3분 명상과 시낭독, 그리고 뮤지션들의 화려한 라인업까지! 싱어송라이터 정민아님의 그윽한 가야금 소리와 함께 가을을 두루 만끽해보세요.
▫️2025년 10월 18일 토 6시 @화순 만연사(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진각로 367) >> 자세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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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네 회원들이 보내온 반가운 소식들, 소소하지만 괜찮은 시도들을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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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비비 협동조합 방문기
9월 20일 토요일, 지수와 ’예비할머니 프로젝트’ 팀이 주최한 전주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방문에 동행하였다. 전주영화제 때 묵었던 글로스터호텔에 1박을 예약하고, 토요일 12시반 전주에 도착. 택시를 기다리는데 30분 넘게 걸린다. 주말이라 여행객들이 아주 많다. 원래 계획은 숙소에 짐을 풀고 이동하는 거였으나 바로 비비협동조합 앞으로. 근처 현대옥에서 지수네 팀과 도킹해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살면서 먹어본 콩나물국밥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비비가 위치한 삼천동은 창동이나 일산 구시가지 같은 느낌이다. 작은 병원, 가게들이 아담하게 늘어서 있고, 동네 입구엔 큰 공원이, 뒷길에는 강변산책로, 그 너머엔 야트막한 산이 있다. 전주 시내 나가기에도 멀지 않고, 버스도 여러 경로로 자주 다닌다.
비비하우스는 도로변 가로수길 상가건물 3층에 위치해 있다. 2003년 전주 여성의전화 소모임에서 시작했단다. 주동자 언니가 지금까지 대표로 있다. 매력적인 눈웃음과 밝은 표정, 낭랑한 목소리. 이 언니 ‘김난이’ 대표가 다섯 언니를 꼬셔서 비혼여성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그 중 한 명이 우연히 알게 된 50년 영구임대주택에 들어오고, 한 명씩 같은 영구임대주택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생활공동체가 되었다.
이들이 20대, 30대 초반이었을 때 해외여행이 자율화되었다. 여행자금으로 월 10만 원씩 회비를 모아 해외여행도 갔다오고 계속 만나 여행을 다니다가 비혼으로 사는 사람들 모임으로 주욱 가기로 하였단다. 그때의 멤버가 이탈자 없이 지금까지 회비도 주욱 모으고 있다 하였다. 이 돈이 출발자금이 되었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연 지 15년차, 상근자 있는 협동조합이 된 지는 10년차가 되었다.
장판을 깐 바닥. 스무 평은 될 듯한 넓은 방. 여기서 요가도 하고, 교육, 모임 뭐든 한다고. 줌마네와 너무 흡사하다. 모든 것이. 장기 계획과 목표를 세운다기보다 그때그때 구성원이 관심있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추진한다. 수익이 나지 않기에 모두 말리는 공간운영. 그러나 적게 벌어서 적게 쓰고,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고,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빚도 없고 남는 것도 없이 계속 유지하고 있다. 지원사업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한다.
한 참여자가 ‘노후자금’은 어떤 식으로 구축하고 있냐고 질문하자, 회계담당자가 ’계획적으로 그런 거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대표가 한마디 덧붙인다. ’우리는 노후를 위해 돈 대신 사람을 모아요.' 노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얼마가 필요한지는 각자 다 다르고, 서로의 맥락과 처지를 이해하는 관계, 안전한 관계망이 우리 자산이자 노후라고 한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들의 향연. 모임이 끝나고 줌마네에서 왔다고 정체를 밝힌다. 줌마네를 이미 알고 있었다며 반가워해준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 하고 비비를 떠난다. 줌마네에서 함께할 비비여행을 계획하며. 오늘 들은 이야기 중에선 ‘노후자금은 사람’이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글 오솔, 하리
[전주여행에서 만난 공간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https://blog.naver.com/spacebb2010
카페 디드 https://naver.me/GcKbsxC1
글로스터호텔 https://naver.me/xnhy82Tt
선거리 맛집 https://naver.me/GEXlfW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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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의 세 작업자 오솔 하리 짱아가 줌마네와 틈틈이의 근황을 일지형태로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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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토 초록실로 모자 3개를 떴고, 그 중 하나만 쓰고 다닌다. 어제부터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0907일 목도리를 거의 다 떴는데, 길이가 짧은 것 같아 다 풀고 새로 뜨기 시작했다.
0908월 어제, 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불현듯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처음 느꼈다.
0920토 전주여행. 비비하우스 갔다가 낙수정길 후배네 집에 들른 날. 1박 전주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브레스테리언(Breatharian 호흡주의)이다. 성용이네 집에서 밤에 황차와 백차를 마시며 영화 세 편은 본 것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다른 이야기들은 그냥 흘러갔고, '브레스테리언'이라는 단어와 관련 캐릭터들은 잔상이 오래 남았다.
0912금 DMZ 피칭데이 첫날. GTX-a를 타고 킨텍스역까지 왔다. 숙소에 사우나가 없어서 근처 목욕탕 검색을 했는데 ‘백두산사우나’ 평이 좋아보여서 밤산책겸 찾아가 보기로 했다. 문촌마을 대단지 아파트를 배경으로 ‘백두산사우나’라는 현판이 호랑이처럼 서 있었다.
0913토 DMZ 둘째 날. 피칭과 피드백들. 피칭 말미에 ‘이 영화의 드라마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부동산 열풍의 세상에 살며 ‘나다운 집’을 욕망한다는 것이 영화의 드라마라고 답했어야 할까? 아니면 이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라 감수성과 영혼이 깃든 작고 작은 장면을 건져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해야 했을까. 피칭 후 다큐멘터리 제작자, 영화제 관계자들과 미팅이 있었다. 인도의 독엣지 캘커타를 설립한 닐로팔 마줌달(Nilotpal Majumdar)을 만났다. 70세는 넘었을 것 같다. 표정이 섬세하고 깊고 따뜻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닐로팔 마줌달이 우리의 트레일러 장면들이 아름답고, 작고 작은 감정과 공간들을 더 많이 담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soulful한 장면들, 예를 들어 창 밖에 손을 내밀어 바람을 느끼는 감각 같은 것들, 언제 이 집을 떠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들에 흔들리며 영롱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집에 머무는 모습들’을 더 많이, 더 세밀하고 은밀하게 담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들었다. 아침에 백두산사우나에 다녀왔다. 동네 할머니들 아지트. 물이 아주 깨끗함.
0916화 DMZ 다섯째 날. 모든 미팅이 끝났다. 풍에 폭우가 쏟아지고 나서 날이 더 서늘해졌다. 4시에 추어탕 집에서 뜨끈하고 고소한 국물에 돌솥밥으로 점저를 먹고, 하리와 주엽역 지나 성저건영 15단지까지 이어지는 골목길들을 걸었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백두산 사우나에 갔다.
0929월 목도리를 두 개 떴다. 하나 더 뜨기 시작했다.
0927토 주말마다 엄마집에 간다. 아버지 간병하는 엄마 하소연 들어주고 함께 밥먹고 온다. 하리는 매일 아침 아버지 요양병원에 들른다. 하리와 나는 아기가 되어 가는 아버지의 ‘똥’에 관한 대화를 자주 한다.
0930화 한끼모임 솥밥이 너무 맛있었고 파김치와 두부부침, 된장국까지 하나 하나 꿀맛이었다.
1005일 추석 하루 전날 엄마집에서 잤다. 새벽에 아버지가 엄마를 불러서 ‘내가 당신 앞에 가게 되어 행복하다’고 했다. 엄마가 ‘그러면 됐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어지는 짧은 대화들을 옆방에 누워서 들었다. 아침에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엄마는 ‘내가 구박해서 미안하다’며 의식 없는 아버지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주사를 맞고 회복한 아버지는 다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엄마를 불러 이것 저것 잔소리와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여보!’하고 부르자 ‘가만 있어 봐. 두 번째 부르면 갈란다’ 하며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는 엄마. 아버지가 다시 부르자 ‘끙’ 하고 일어나 아버지 침대를 향해 걸어가는 엄마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1006월 밤에 집에 오는 길에 박영숙 선생님 소천 소식을 들었다. 내릴 정거장을 놓쳐서 빗길을 두 정거장 걸었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이 구절을 계속 부르며 집까지 왔다. 선생님. 먼길 평안히 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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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목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 오늘부터 6박 7일간 영화 <그여자들의 집> 피칭을 위해 파주에 머문다. 처음 탄 GTX-A라인. 서울역에서 킨텍스역까지 17분. 겁나 빠르고, 겁나 깊다.
0913토 이번 피칭은 아침마당 스타일. 쇼파에 앉아 모더레이터와 대화를 나누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번 피칭을 거치며, 영화가 정말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0920토 파주에서서 돌아오자 마자 전주 여행. 생활공동체를 꿈꾸는 청년들의 모임인 마포 ‘예비할머니 프로젝트’ 팀을 따라 비비 협동조합에 방문했다. 비혼 여성들이 일상을 나누고 시간을 쌓아 만든 공간. 같은 70년대생들의 구구절절 공감되는 이야기.
0922월 오늘은 병원순례의 날. 갑상선 약을 타러 아침부터 신촌 세브란스 가서 피 뽑고, 진료 기다리는 시간 동안 향동 요양병원에 들러 아버지 면회하고, 다시 세브란스에서 5분 의사 면담. 다행히 갑상선 수치는 이상무. 틈틈이에 출근해 회의를 마치고 나니 온몸이 천근만근. 오솔과 함께 화한의원에서 쑥뜸을 뜨며 하루를 마무리.
0926금 매일 신발장에서 신발 두세 켤레를 꺼내 나가는 길에 버린다. 오늘은 아빠 운동화 세 켤레를 버렸다. 아직도 많다.
0929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책장 정리를 했다. 거실 큰책장 두 개, 작은책장 두 개, 안방 작은책장 하나, 내 방 책상과 창가 아래에 쌓아 놓은 책들을 다 꺼내니 거실이 책의 바다가 되었다. 책장정리 중간정산 결과 1. 낙성대 헌책방 흙서점에 이틀에 걸쳐 약 40권의 책을 판매하여 45,000원 벌었음 (2권 구매하여 6천원 다시 나감) 2. 알라딘 온라인 중고 판매로 열박스, 약 200권을 보냄. 오늘 택배기사 픽업. 바코드 스캔으로는 예상금액이 20만원 넘는데, 과연 얼마나 들어올지? 3. 바코드도 없는 옛날책과 구매 불가의 낡은 책들은 헌책수거 전문점에서 방문수거. 사진 찍어 문자로 문의하니 다음날 바로 가져감. 약 300여권의 책을 밤새 묶어서 밖에 내놓음. 키로당 쳐준 건지, 5천원을 넣어준다. 정리 후 남은 책은 약 150권. 종이책은 읽지 않은 지 오래인데, 아직 못 버린 미련의 흔적이랄까.
0930화 한끼모임 날. 오늘따라 유난히 밥이 맛있다. 추어탕에 들어가는 게 산초가 아니라 제피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틀간 책장정리를 하고 났더니 허리가 점점 아파온다. 민생회복쿠폰으로 맑은손 지압원 방문.
1003금 아침에 일어나다 ‘억’소리를 냈다. 허리가 안 펴진다. 왜 꼭 연휴 때만 되면 어디가 아픈 걸까? 틈틈이에 나왔다가, 연휴에도 문을 여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1006월 추석을 맞아 오빠네 집에 모처럼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외출해 쇼파에 누워 계시고, 올해 입시생인 조카는 명절 잔소리가 무섭다며 아침부터 도서관에 갔단다. 밥먹으러 돌아온 조카에게 말없이 손뜨개 인형과 네잎클로버를 선물했다. 아버지는 호박전을 맛있게 드셨다. 비오는 명절 오후, 검은 모자를 쓰고 우비를 두른 아버지와 휠체어를 미는 오빠, 커다란 우산을 든 나. 셋이 병원으로 향하는 그 길이 종종 생각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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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일 친구들과 생파겸 파주 나들이. 이번 생일선물은 농사도구 종합선물세트. 농사용 앞치마(실은 미용사용ㅎ)와 일제 전지가위, 그리고 톱 중에 최고라는 백마톱. 밭에서 내 피부를 지켜줄 선크림. 갑자기 부자된 기분.
0911목 요즘 나의 일순위는 퍼머컬처. 퍼머컬처네트워크 대회를 위해 울산 울주군 드넓은 벌판에 왔다.
0912금-0914일 벌써 4회째라는 퍼머컬처 네트워크 대회. 3일간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벌판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함께 일하고. ‘여기엔 나같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0922월 깜짝이야! 내가 담근 캠벨와인 너무 맛있잖아!
0923화 6주간의 발효수업 종강. 많은 걸 배웠고 많은 걸 담갔고 냉장고가 그득해짐. 그리고 주방이라는 공간이 달리 보이기 시작함. 강요된 가사노동의 굴레로만 보였던 부엌이 그럼에도 누군가의 소중한 실험실이자 작업공간이었겠구나 싶음.
0924수 다시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자, 걷자, 쓰자. 그리고 일단 씻자 ㅎ
0925목 9월이 다 가고 있다. 이제 진짜 가을이다. 시골 큰밭-별별밭 작업 중.
0926금 나의 첫 작업실 포캣빌라 4층방 짐 빼는 날. 2년간의 작업실이 나에게 남긴 것은?
0927토 강화도 퍼머컬처 수업. 오늘의 주제는 적정기술. 아침 7시 강화도 천변에서 달뿌리 풀과 (실수로) 갈대를 채취. 그 풀들로 빗자루를 만들었다. 나는 항상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손으로 만드는 걸 무지 재밌어 하는 건 확실해.
0928일 오랜만에 완전체로 만난 산뽀뽀. 워밍업 삼아 인근 시장 골목을 한바퀴 돌고 맛있는 속만두국을 먹음
0930화 김치의 한끼모임 덕분에 한 달에 한 번 틈틈이에서 열게 된 ‘짱아의 아주작은 채소가게’. 오늘은 채소 약간과 그동안 만든 패스토 2병, 와인 1병, 허브코디얼 1병 그리고 어젯밤 한시간 반 동안 뭉근히 덖은 토종 검은찰옥수수차를 가지고 간다.
1001수 요즘은 과일만 보면 술을 담그고 싶다. 자두, 사과, 포도주에 이어 오늘은 남아 있던 골드키위와 복숭아로 술을 담갔다. 유리병에 담긴 영롱한 빛. 아름답다.
1005일 저녁에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고스톱을 침. 갑자기 어릴 적 민화투를 가르쳐주신 할머니가 생각남.
1008수 내일 시골 별별밭에서 작업할 것- 새 고랑에 다년초 옮겨 심기. 양배추, 배추 고랑에 콩과 식물 심기(수확용 X). 카모마일과 한련화, 톱풀, 타임 나눠서 여러 곳에 이동. + 은행나무 및 병풀꽃 잎 채취.
1009목 드디어 아침걷기 시작. 토당공원 700미터 트랙 3바퀴. 오가는 걸음까지 합쳐 5천보.
1010금 농한기엔 기타를 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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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네는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서적 성장과 자립, 연대와 서로돌봄을 위한 비영리 네트워킹 플랫폼입니다. 여성 작업자들이 협업하여 2001년부터 글쓰기, 창작수업, 영상워크숍, 산책학교, 집담회, 전시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하고 있으며, 2023년 6월부터 성산동에 공유작업실 틈틈이를 열어 오솔, 짱아, 하리 세 명의 작업자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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