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틈이 되는 어떤 순간, 장소,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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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아는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 어느 농사작업자의 상반기 결산
글_짱아(농부, 틈틈이 공동운영자)
얼마 전 한끼모임에서 오랜만에 가람을 만났다. 가람이 날 보더니 "요즘 뉴스레터 보니까 짱아는 맨날 농사 얘기만 하더라고요" 한다. "그거야 제가 요즘 농사만 지으니까요." 한줄 대답을 해놓고는 뭔가 아쉬워 혼자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결정! 이참에 올해 난 뭘하고 어떻게 살았나 일종의 중간결산을 해보기로 했다.
오래전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근 10년째 첫 번째 영화를 만들고 있는 그는 꽤 알려진 본업이 따로 있고 영화는 언제 완성될지 알 수 없었지만 프로필 맨 앞줄에 언제나 '영화감독'이라고 썼다. 나도 언제부턴가 나를 농부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줌마네 기획팀이자 틈틈이 운영자로 분주해서 밭에는 기껏해야 일주일에 반나절 다녀오는 게 다 였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농부인 것 같았다. 농사로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했다.
어느날 난 함께 틈틈이를 운영하는 오솔과 하리에게 안식년을 갖고 싶다 제안했다. 뜻밖에도 제안은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줌마네 기획팀 14년차가 되던 2025년 2월부터 지금까지 1년 6개월을 뉴스레터에 ‘오하짱의 작업일지’만 쓰는 날라리(?) 운영자로 살고 있다. 아! 그래도 한달에 한 번 '한끼모임' 날은 반드시 김치와 김치의 요리를 차에 싣고 틈틈이에 간다. 뱃속이 따뜻해지는 김치의 밥을 먹으며 안부를 나눈다.
나는 요즘 세 개의 밭을 오가며 주3일 밭일을 하고 주 2~3일은 밭에서 온 것들로 먹고 마시고 쓸거리를 만들며 산다. 작년 겨울 안식을 선언하자, 어디선가 불어온 순풍이 나를 *퍼머컬처의 세계로 안내했고 나는 원래 그러기로 되어 있던 것처럼 그 세계에 스며들었다. 퍼머컬처를 만나면서 나의 밭이랑은 곡선이 되었고, 땅을 갈지 않은 내 밭에는 봄이 되면 스스로 돋아나는 나물과 허브, 그리고 산야초까지 백여 종의 식물들이 공존한다. 버섯과 지렁이, 달팽이는 물론이고 여러 벌레들도 함께. 흙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들이 있을 것이다. 올해부터는 드디어 나무가 있는 숲밭 농사도 짓게 되었다. 내가 돌보는 숲밭에는 보리수, 하얀앵두, 블루베리, 준베리, 시베리안골담초, 참죽나무, 자귀나무 그리고 호두나무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풀과 열매들이 나와 내 가족을 키운다. 가끔은 친구와 이웃들에게 그 소산물을 나눠주면서 생색도 내고 가끔은 그 소산물로 만든 먹을 거리를 팔기도 한다.
그나저나 결산이라고 하면 자고로 수입과 지출이 필요한데. 그 사이 내가 얻은 것과 그것을 위해 내어준 것들은 무엇이었나? 이쯤에서 그동안 이곳 월간줌마네에 쓴 짱아의 작업일지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 짱아의 중간결산 ::
(지출) 내어준 것: 시간, 관심, 땀, 땀, 땀, 약간의 관절손실과 농사와 배움을 위한 약간의 돈
(수입) 얻은 것: 일부 채소/음료/술의 자급, 허브 가공법과 소소한 발효 기술, 마음의 안식, 살아있다는 감각, 나누어 먹는 기쁨, 약간의 돈 걱정, 평균이 된 근골격량, 함께 농사짓는 멋진 여자들
이만하면 잘 산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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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머컬처(Permaculture)는 permanent(지속가능한)과 agriculture(농업) 또는 culture(문화)의 합성어다. 경쟁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번영하는 자연의 원리와 패턴을 모방해서 우리의 삶과 관계, 농사와 문화를 설계하는 실천방식이자 삶의 철학이다. '땅을 돌보라, 사람을 돌보라, 공정하게 분배하라, 영혼을 돌보라'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삼고 가장자리를 소중하게 여긴다. 나는 각자의 장소에서 N개의 퍼머컬처를 만들어 가는 300여 명 퍼머컬처리스트들의 연결망, 퍼머컬처네트워크 @koreapermaculturenetwork의 일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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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네와 틈틈이의 프로그램과 회원들의 반가운 소식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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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소식]
01. 틈틈이 책읽기 (8/18, 8/25)
8월의 책읽기 모임에서는 [슬픔을 겪어야만 열리는 문이 있다](와카마쓰 에이스케, 2025)를 2회차에 걸쳐 읽습니다. 인사나 소개 없이 한 페이지씩 낭독하고, 각자의 여운과 질문을 안고 조용히 귀가하는 책모임입니다. 혼자서는 읽기 힘든 책을 함께 완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일시 | 8/18(화) 8/25(화) 오후 7:30~9:00 참가비|2회차 3만원 (줌마네회원 2만원) > 신청하기
02. 틈틈이 시네마 (8/19)
8월의 틈틈이 시네마에서는 핀린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과거가 없는 남자(2005)>의 한 장면을 샷바이샷하고, 참가자들의 자립영상 편집본을 함께 리뷰합니다. 레퍼런스 책과 알찬 영화 정보도 공유합니다. 각자 작업 중인 영상을 가져오셔도 좋고, 참관만 해도 환영입니다.
일시|8월 19일(수) 오전 10시-12시 참가비|1만원 (줌마네 회원 무료) > 신청하기
03. 틈틈이 작업장 - 허브사과 막걸리 담그기 (8/20)
도시농부 짱아와 함께하는 풀생활 워크숍 1탄! 지난 한끼모임에서 인기폭발이었던 허브막걸리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보아요. 짱아가 밭에서 직접 키우고 채취한 허브들을 보고 만지며 공부도 하고, 허브음료와 막걸리 칵테일 시음도 하고, 자기만의 막걸리를 직접 담가 집으로 가져가는 알찬 원데이 워크숍입니다.
일시|8월 20일(목) 오후 2시-4시반 참가비|4만원 신청|@tmtmie 인스타 DM(이름/연락처/인원수 남겨주세요)
04. 틈틈이 한끼모임 (8/23)
입추와 말복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서 8월 한끼모임을 엽니다. 제철요리 작업자 김치님이 고소한 햇콩밥과 뽀얗게 우려낸 감자곰국으로 든든한 한끼를 차려주십니다. 요맘때만 먹을수 있는 고구마줄기김치와 매콤짭쪼름한 멸치파무침, 제철쌈채소에 지리산에서 3년 숙성한 된장을 곁들입니다. 시원한 틈틈이에서 맛깔난 밥상 나누며 기운 충전해요!
일시|8월 23일(일) 오후 12시-2시 참가비|1만5천원 > 신청하기
05. 청소년 게더링 영화학교 (8/29~9/19)
서울시립대학교의 2026 모두의인문학 프로그램에 틈틈이가 함께합니다. 매주 토요일, 네 번의 만남 동안 영상 도구를 익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일구는 동네 작업자들을 만나 뮤직비디오도 찍고, 게더링지도도 만들고, 자기돌봄과 연결을 위한 시간을 갖습니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며 참가비 무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DM으로 문의 주세요.
일시|8/29, 9/5, 9/12, 9/19 (토) 오전 10시- 오후 1시 문의 및 신청|@tmtmie 인스타 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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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치자와 초록빛 방아의 만남 - 7월 12일 한끼모임
뜨거운 여름 햇살을 듬뿍 머금고 자란 제철 채소들로 풍성했던 7월의 밥상. 노란빛 고운 치자밥에 호박잎과 방아잎 쌈, 아삭한 노각무침, 매콤한 밥도둑 머위나물, 깻잎과 양파를 돌돌 말아 넣은 오이소박이와 시원한 오이물김치까지. 더위에 지친 입맛을 제대로 깨워주는 한상이었답니다. 여기 더해 농부 짱아가 찹쌀에 사과와 민트를 섞어 빚은 막걸리로 식전 칵테일을 만들어줬는데요. 여기저기 ‘맛있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인기 음료였습니다. 김치님은 여름엔 옥수수를 꼭 먹어줘야 한다며 메뉴에도 없던 찰옥수수를 한아름 가져오셨어요. 첨가물 하나 없이 삶았을 뿐인데도 여리고 쫀득한 식감에 절로 하모니카를 불게 되더라고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날의 킥은 방아잎. 짱아가 올해 처음 키운 방아잎을 쌈에 곁들이니 향긋함이 한층 살아났습니다. 돌아가는 길, 방아 한다발을 꽃처럼 품에 안은 참가자들의 표정이 환해집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출발한 이들이 밥 한 끼로 연결되어 느슨하고 다정한 시간을 나누는 한끼모임. 늦여름 밥상에서 다시 만나요. (글_하리)
이 정도면 작은 영화제? 7월21일 틈틈이시네마
7월의 틈틈이시네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채로운 영상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와 일상을 담아낸 에세이 영상부터 여행기, 홍보 영상, 행사 스케치까지. 영상의 결도, 표현의 폭도 한층 더 풍성해진 작품들을 만나고 나니, 꾸준히 만들고 함께 리뷰하고 서로의 작업을 나누는 시간이 쌓이며 작품도 작업자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샷바이샷과 각자의 편집본 리뷰, 그리고 알찬 영화 정보 공유로 채워가는 틈틈이 시네마. 8월에 만날 새로운 이야기와 영상이 기다려집니다. (글_하리)
🎬 상영작 목록
<살구가 사는 법> 김은실
〈가즈아, 부나켄으로〉 박종길
〈내 맘에 쏙 든 고창 여행〉 최혜숙
〈차곡차곡 매일을 짓는법 - 전시스케치〉 문소라
〈시민의 낙원-안무연습 스케치〉 강현구
〈둥이들의 한살성장기〉 이기복
〈7월의 수집〉 한희경
〈아빠와 사과〉 울림두레돌봄사협 영상제작팀
[경험의 멸종]으로 시작한 틈틈이 읽기모임
혼자 완독하기 어려울 것 같아 시작한 책읽기 모임이 3회차로 마무리되었다. 7월 14일 첫 모임 때, 자기소개 없이 저녁 7:30 정시에 낭독을 시작해서 중간에 한 번 쉬고, 9시 정시에 마쳤다. 후기나눔 하지 않고 고요히, 책 속 문장과 어떤 단어들을 마음에 담고 헤어졌다. 두 번째 모임에서도 저녁 7:30분 정각에 낭독을 시작했다. 중간 휴식 때, 잠시 대화했다. 충만함이 사라지지 않을 만큼만. 한 사람이라도 오면 같이 완독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책읽기였는데 몰입과 집중의 시간을 오롯이 함께 가질 수 있었다. 3회차. 마지막 장과 에필로그까지 완독! 모두 감격하며 다음에 읽을 책과 일정까지 정한 후 헤어졌다. 후일담 피드 메인으로 2021년 양평 한옥펜션에서 수세미뜨기+수놓기 1박 하던 사진을 올렸다. 줌마네와 틈틈이에서 하는 작업들의 일관성이라니. 경험멸종의 비대면, 간접경험의 시대에 함께 밥 먹고 영화 만들고 책읽는 작업자들의 아지트 = 틈틈이 (글_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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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의 세 작업자 오솔 하리 짱아가 줌마네와 틈틈이의 근황을 일지형태로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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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목 일하러 통영에 왔다가 하루 묵어가기로 함. 관광지와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다. 봄날의 책방 근처 게하 1인실. 걸어서 1분거리에, 참 예쁘고 정갈한 동네목욕탕이 있는 곳. 첫날은 쉬는 날이라 못가고 다음날 아침 이른 산책 후 목욕을 했다.
0714화 책읽기 첫 날. 비 오는 저녁에 넷이 모여 천천히, 한 자 한 자 소리내어 읽었다. 7:30부터 9:00까지 중간에 10분 쉬고, 다른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
0711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울림두레돌봄사협 멤버들과 극영화제작워크숍을 어찌나 재밌게 했는지! 연출 촬영 출연 편집까지 한팀이 되어 작업한, 사협팀 첫경험.
0716목 영자원에 4시간 넘는 다큐를 보러갔는데 1분 지각해서 못 들어감. 아쉬움보다는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안도감이 순간 올라왔다.
0719토 봄봄정원 영상반 상영회. 정원사들의 영상기록이 반짝거린다. 7월은 제작과 상영회가 많구나.
0721화 책읽기 2회차. 미도리가 여름감기로 빠져서 셋이 읽었다. 이 책은 대면해서 낭독해야 더 잘 이해될 듯. ‘경험의 멸종’. 제목과 표지는 딱딱한데 내용은 풍부한 예시와 선명한 지형도 그리기를 해줘서 시대이해에 큰 도움.
0722수 9월에 열릴 다방산책 공간 탐사하러 청량리 다방 몇 군데를 들렀다. 경험의 멸종을 읽은 뒤라 그런지, 스벅의 키보드 두드리는 한방향 좌석과 달리 마주앉아 수다꽃을 피우는 대면의 공간이 참 아름답고 소중한 느낌이었음.
0728화 책읽기 3회차. 전원출석. 7장과 에필로그까지 완독. 모두 감격. 다음에 읽을 책과 일정까지 정한 후 헤어짐. ‘집에서 혼자 읽으면 되는데 왜 거기까지 가서 모여앉아 소리내어 책을 읽냐’는 질문을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받았고, 난 사실, 아무도 신청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모임을 열었는데. 만나서 함께 책읽기, 계속 하고 싶다. 머리가 맑아짐.
0730목 여름 휴가. 강릉 현덕사 템플스테이에 도착했다. 강릉역에서 버스 두 번 갈아타고 절입구 정거장에서 30분 걸어서 도착. 폭염의 오후.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산길에 그늘과 개울 흐르는 소리 덕분에 걷기 명상하는 느낌이었음. 차소리, 도시소음이 한 점도 없는 길을 오랜만에 걸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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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4화 이번 여름엔 여름방학 삼아 7, 8월을 통째로 쉬고 싶었는데... 현실은 일주일 휴가가 최대치. 어디라도 가자! 싶어 설악산 울산바위 뷰로 유명한 고성에 왔다. 첫날, 늦잠 잔 느낌에 눈을 떴는데 새벽 다섯시반. 밖은 이미 환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으로 움직이는 구름을 멍때리며 바라보았다. 흰색 뭉게구름은 멀리, 점점이 찢어진 잿빛 먹구름은 가까이 빠르게. 산에 비친 그림자가 함께 움직인다. 한숨 더 자고, 갑상선 약과 역류성식도염 약을 챙겨먹고, 요플레와 바나나로 허기를 채우고 밖으로 나섰다. 리조트 한켠의 작은 소나무숲 산책로에는 강풍에 떨어진 솔잎과 가지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물가 근처 워터코인 닮은 풀들이 눈에 띈다. 동글동글 옆구리 터진 엽전을 닮았다. 네이버 검색창을 켜니 이 식물의 이름은 '병풍'. 아, 병풍이 이렇게 생겼구나. 나무 사이사이 가지를 뻗은 담쟁이덩굴 한 줄기를 몰래 뜯어 챙긴다. 화분에 심으면 집에서도 무성히 가지를 뻗어줄까?
0715수 30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속초 시내로 향했다. 동그란책, 문우당서림, 동아서점. 오늘은 동네 책방 탐험의 날. 동그란책방은 그림책과 귀여운 자원순환 소품들이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바다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동네 식물프린트 작가 바스큘럼의 엽서와 손수건도 발견했다. 펠트로 만든 나무늘보 모빌이 무척 탐이 나서, 주변을 맴돌다 결국 지갑을 열었다.
칠성조선소 지나 동아서점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문우당서림. 1984년부터 있었다는데 서점이 참 편안하다. 나이지긋한 주인장의 목소리도, 곳곳에 놓인 안내글도 다정하고 사려깊다. 곳곳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책 사이사이 식물이 놓여 있고, 2층 한켠엔 ‘박완서 특별전’ 중인 작가의방 전시공간이 있다. 서점 입구 모퉁이엔 얇은 날적이 노트들이 책장 한곳을 가득 채운 독자만의 공간도 있다. 집 주변에 이런 곳 하나 있으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책 한권 사들고 다시 길을 나선다.
마지막 목적지는 동아서점. 하얀색 건물에 너른 통창이 시원하다. 강원도 속초에서 70년째 운영 중인 동네서점이란다. 평범한 듯 눈길을 끄는 큐레이션과 주인장 부부의 취향이 뚜렷한 손글씨 소개글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요샌 책방에 가도 휙 한번 둘러보고 엽서나 굿즈 하나 집어들고 끝이었는데. 이날은 내 마음이 그랬는지 주인장의 영업글이 통했는지 이책 저책 손이 갔다. 책을 읽고 싶어진 게 얼마 만인지. 자꾸만 무거워지려는 장바구니를 간신히 비우고, 시집과 에세이를 한 권씩 샀다. 비가 곧 쏟아질 듯하여 택시로 숙소에 돌아왔다.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보고, 잠들 때까지 허수경의 시집을 읽었다.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허수경
아, 나는 모르겠네
구십이 되어 나는 그대가 먼저 간 길을 아주 오래 보다가
이렇게 쓸지도 몰라
저녁은 갑자기 오더니 어둠은 천천히 오시네, 라고
아직 한번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는데 세월은 이만큼 가서
뒤돌아보니 갑자기 저녁은 도착했고 밤은 그대의 고요한 손처럼 그렇게 천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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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목 2년째 농사만 지으며 조용히 살고 있는데 식구들 중 내가 제일 바빠 보이는 건 착각일까?
0704토 턱 때문에 상추쌈 못 먹은 지 2주차. 아... 와그작 와그작 풀들을 한가득 씹어먹고 싶다!
0707화 드디어 병원에 가서 꿍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병원에 자주오는 게 힘들고 약을 계속 먹는 것도 별로고요… 첫 일주일을 제외하고는 차도가 없어요. 그러니 이제 별 수 있겠어요. 그 기구라는 걸 맞추죠 뭐. 보험은 안 되고 가격은 어느 알바생의 한달 수입 정도 되는 그거, 그거 맞출게요..
0710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다초점 안경 맞출 결심.
0714화 드디어 턱관절 치료 기구를 받았다. 오늘부터 난 투명하고 단단하고 속이 빈 이빨 모양의 물체를 매일밤 아랫니에 끼우고 자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예상 기간은 약 6개월~10개월. 할 수... 있겠지?
0717금 한달 열흘 만에 산뽀 모임. 럭비공, 쇼 그리고 민들레와 함께 완만한 북한산 둘레길 1,2 코스를 걷고 고등어구이를 먹고 사일구기념관을 둘러보고,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수다를 떨었다. 어깨와 발목, 턱 관절 치료 이야기를 하다가 땅속에서 다섯 번의 변태를 하며 살다 13년이나 17년마다 나무 위로 올라와 강렬한 소리로 세상을 채우곤 2주 후 생을 마감하는 매미 이야기, '앉을자리(SIT SPOT)'라는 책 속 단어로 시작해 미사 볼 때도 꼭 자기 자리에만 앉는 신도들의 얘기. 그리곤 글과 삽화의 조화와 부조화에 대해, 돈버는 일과 의미있는 일에 대한 소회를 넘어 흘러내리지 않는 안경테 브랜드와 안경줄 링크를 공유하고는 다시 발리여행 갈 때 주의할 점과 여름 여행에 꼭 필요한 신발이 뭔지에 대한 토론으로 종횡무진. 그 와중에 난 누군가의 톡으로 긴급해진 풀샴푸 만들기 준비 때문에 세 사람과 통화를. '별일 없이 산다 해도 삶은 누구에게나 공사다망'ㅎ
0718토 바람길숲밭 밭짱 러비와 양평 수미마을 '땅만토' 행사 탐방. 이 행사를 기획한 사람들은 3개월 청년귀농학교 졸업생들이란다. 3개월 동안 숙박하며 농사공부를 하고 밭을 일궜다고. 세상엔 농사에 진심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듯.
0719일 아침 10시 4분 전 행신도서관 디지털자료실 도착. 아침부터 분주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동안 머리 속으로 해야지 해야지 했던 일들의 구체적인 준비를 생각해 보기로. 잠깐! 그전에, 오늘 점심은 뭐 먹지? 그래 화성배추로 된장국 끓이고 김치볶음과 두부, 구운김&부추간장, 계란요리도 하나 할까?
0724금 친구가 나이 많고 자그마한 한옥으로 이사를 했다. 식구는 둘. 친구와 2년 전 가족이 된 중형견 콩순이. 친구는 이 집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올해 처음 만든 엘더플라워 샴페인을 친구네로 가져갔다.
0725일 정신건강 심리 바우처라는 게 있다고. 살고 있는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보건소를 방문해서 신청하면 면담 후 최대 8번까지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주 고소득자는 일부 유료)
0728화 큰소리 쳐 놓고는 막상 하려니 귀찮고 부담되고.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데… 지난 번 담근 허브사과 막걸리가 이사람 저사람 손을 타더니 어느새 난 허브 막걸리 담그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작은 바람의 요정들이 등뒤에서 나를 이 방향으로 밀어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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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요리작업자 김치가 매달 한끼모임에서 선보인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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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 답답한 속 내려주는 노란 빛의 약선 재료
파스가 귀했던 어린시절, 손목을 삐끗하거나 넘어져 발목을 접질렀을 때 엄마는 치자열매를 절구에 빻아 밀가루에 개어 붙여주시곤 했다. 한참을 붙이고 나면 어느새 시퍼런 멍이 드러나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노란 치자색 얼룩이 남아 친구들이 볼까 괜히 창피하기도 했다.
치자는 속 답답함을 내려주고 염증과 붓기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치자열매 2~3개를 찬물에 우려낸 물로 밥을 하면 노란 색깔이 예쁘기도 하지만 독특한 향이 우러나고 밥알이 탱글해진다. 노란 치자밥에 시원한 물김치만 있으면 시원한 여름 한 끼로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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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밥] 레시피
재료 쌀2컵, 치자 10g, 찬물3컵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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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 3컵에 치자를 넣어 30분간 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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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2컵을 씻어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쌀을 불리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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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 우린 물 2컵을 넣고 밥을 짓는다 (남은 치자물은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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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조영선)_ 지리산 제철음식 장인 고은정 선생님에게 사사받았고, 매년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 숙성 중이다. 홍성, 전주, 통영, 홍천 등을 오가며 마크로비오틱 요리, 사찰음식, 발효음식(장과 김치)을 연구해 왔고, 지금도 매일 정성스런 제철밥상을 차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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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네는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서적 성장과 자립, 연대와 서로돌봄을 위한 비영리 네트워킹 플랫폼입니다. 여성 작업자들이 협업하여 2001년부터 글쓰기, 창작수업, 영상워크숍, 산책학교, 집담회, 전시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하고 있으며, 2023년 6월부터 성산동에 공유작업실 틈틈이를 열어 오솔, 짱아, 하리 세 명의 작업자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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