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틈에서 돋아난 소소하지만 괜찮은 시도들을 배달합니다 줌마네와 틈틈이 맴버들의 소소하지만 괜찮은 시도들을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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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세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사는 것이 내 20대의 모토였다. 20대 후반에 성폭력상담소 스탭으로 일했던 적이 있는데 임금이라기보다는 교통비를 받으며 일했다. 이후 나의 경제적 자립인생의 행보는 학원강사, 과외선생, 잡지사 객원기자, 페미니스트 카페 창업하고 운영, 방송프로그램 진행자, 패널, 시간강사, 특강강사, 워크숍 진행자, 줌마네 대표, 영화감독, 영상수업강사, 글쓰기강사, 초빙교수, 단행본글작가, 캠패인기획자, 공연기획자, 단행본기획, 기업사회공헌팀 콘텐츠기획사업, 서울문화재단과 한국여성재단, 서울시의 지원사업실행, 글쓰기와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강의프로그램 기획자, 영화제심사위원, 영화제모더레이터, 행사진행자, 사회자로 변주하며 이어졌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1986년 즈음엔 대기업은 여자를 뽑지 않았고,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것 외에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엔 카페나 편의점도 없었고, ‘일터’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생소하고 어려웠다. 서른살부터 62세까지 30년 동안 ‘없는 일을 만들어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울렁증은 30대를 지나 40대를 넘어 50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벌어야 할 돈과 나가야 할 돈 계산에 일기장 곳곳이 숫자로 가득하고, 프리랜서 비정규직 전문직 자영업자의 출퇴근 없는 작업의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다. 그 동안 내가 기획한 일들을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 일들을 또 다른 주체들과 같이 하며 나는 30년 넘게 밥을 굶지 않고, 빚을 지지 않고, 살아왔다.
올해 나는 62세가 되었다. 나는 30년이 넘게 여러 일들을 하며 자신과 동료의 작업을 유지하고, 딸과 자신의 생존을 지켜왔다. 그래서 나는 오솔, 오소리, 이숙경에게 ‘틈’을 마련해주었다. 지금 그 시간을 보내고 있다. 1월과 2월에 정동진으로 두 번 여행을 갔고, 여주에서 하루 머물며 친구와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3월에는 구미와 상주, 또 한 번의 정동진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걷고 싶은 길을 찾아서 자주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멀리, 내가 아닌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위해 했던 일들을 거두고 나에게 다가갈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괜찮다. 틈을 내기로 했으니 곧 가 닿을 것이다.
글_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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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의 세 작업자 오솔 하리 짱아가 줌마네와 틈틈이의 근황을 일지형태로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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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 토 대학 후배들과 정동진 여행. 세 명이서 호위해줘서 바다위 철망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고소공포증 보유자를 사방으로 감싸며 시야를 가리고 어깨와 허리를 지탱해준 덕에 혼자서는 갈 수 없었을 길을 걸었다. 의지할 수 있게 된 나.
0212 화 틈틈이 시네마_에세이다큐 특강. ‘에세이와 다큐 사이’에서 영상으로 스토리텔링한다는 것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아녜스 바르다, 크리스 마커, 다이렉트시네마 등등의 단어가 오가고, 틈틈이에 곽 찬 반짝이는 눈동자들.
0214 금 포캣빌라 거주민들과 티타임. 밤늦은 시각까지 수다. 공교롭게 입주민들 모두 권고사직, 퇴직, 안식월을 맞이했음. 한 숨 돌리는 페이지.
0222 토 봄봄파티+총회. 양송이수프를 끓였고, 벼룩시장을 열었으며 하리의 손뜨개 소품들을 팔았다. 한 해 틈틈이 살림살이도 공유하고, 2025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도 나누었다.
0220 목 거의 10년째 말로만 하던 지방에 사는 친구 만나러 가기를 했다. 여주행. 신륵사 앞 강가는 소음도, 불편하게 시야를 가리는 건물도 없이 오직 걷기 좋은 길이었다. 친구가 회의와 회의 사이 틈을 낸 시간에 카페에 앉아 장수다를 떨었다. 퇴근 후 다시 만난 친구와 또 수다를 떨었다. 맑은 대구탕을 먹었다. 사우나 딸린 호텔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친구가 싸준 여주 땅콩과 떡국떡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3월엔 구미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
0221 금 매달리기 운동기구를 조립했다. 일주일 전에 도착했는데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조립했다. 중간에 손잡이를 잘못 끼워서 다 해체했다가 다시 했다. 하루에 한 번씩 베란다에서 매달리기를 한다.
0223 일 한컷 영상팀과 정동진 워크숍. 바다에 거꾸로 놓여 있던 의자를 일으켜 놨더니 멤버들이 한 사람씩 의자에 앉아 서로를 인터뷰한다. 알아서 참 잘 하고 쉬고 만들고 나누고 머물고 노는 사람들을 이렇게 떼로 만나다니. 일출도 영롱했다.
0225 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에덴의 동쪽’을 봤다. 제임스 딘이 기차 위에 앉아 웅크리고 있는 장면의 포스터를 보고 마음이 동해서 갔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니 압도하는 욕망의 얼굴과 몸짓들이 뜨거웠다. 회춘.
0228 금 하리 생일 선물로 손뜨개 실을 보냄. 기뻐해서 기분이 좋았음.
0304 화 줌마네 마음반 1기 멤버들과 틈틈이에서 회동. 미국에 사는 ‘헬렌’과도 영통.
0305 수 동네에서 열린 명상수업 1회차 참여. 명상 안내자의 심플하고 도인스럽지 않은 안내가 맘에 들었다.
0307 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크리스 마커의 ‘태양없이’ 관람. 저녁에 떡국을 사 먹고 영화를 봄. 중간에 깊은 잠에 빠지지 않아 다행. 크리스 마커가 푸티지를 이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좋다. 그런데 알고 보니 크리스 마커는 1911년생 여성감독 니콜 베드리스의 ’파리 1900’이라는 제목의 영화 작업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는 것.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파리 1900’도 상영해준다고 함. 알고 보면 어떤 거장의 앞에 어떤 여자의 작업이 있었거나 그 옆에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음. 여자들의 작업은 산업과 정치 시스템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아 사적인 활동으로 치부되다 기록되거나 언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줌마네의 20여 년의 기록을 꼼꼼하게 기록해준 오보와 루후나, 많이 고마워요.
0309 일 아버지 병원에 낮에 들러봄. 작은 시술 후 회복중. 남동생이 간병하러 와서 밤에 잠을 너무 많이 잔다고 아버지가 투덜대자, 엄마가 ‘조용히 해요’라고 입을 닫게 함. 남동생이 자리에 누우면 바로 코를 곤다며 투덜대는 아버지. 나도 그러는데. 아버지가 시술 후 크게 아파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프면 더 투덜거리심.
0310 월 하리가 열흘의 휴가를 마치고 업무 복귀. 기념으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점심 함께 먹음. 한강까지 햇빛 받으며 오랜만에 긴 산책. 5월부터 진행할 프로그램 회의. ‘노래교실, 손뜨개, 음악다방, 원샷, 반찬가게… ’와 같은 키워드 생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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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 화 지원사업 중간보고의 나날들. 그동안 잔잔히 뭔가 계속 했구나.
0222 토 따뜻한 양송이수프가 있던 봄봄파티. 플리마켓에 그동안 틈틈이 만든 손뜨개 물건들을 내놓았다. 과일 키링을 열심히 떴는데, ‘새’들이 인기였음.
0225 화 1박2일 워크숍이 끝나고 정동진에 하루 더 머물렀다. 목욕과 물회. 정동진이 점점 친숙해진다.
0227 목 휴가 전날, 허리를 삐끗했다.
0228 금 내 생일은 2월 29일. 올해는 생일이 없다. 그런데 잊지 않고 오솔이 뜨개실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실 선물은 난생처음. 뭘 뜨지? 실이 도착하기도 전에 유튜브와 핀터레스트에서 예쁜 도안 찾기 삼매경.
0302 일 연휴 내내 허리가 아파 누워만 있었다. 이렇게 휴가를 날리다니ㅠㅠ
0303 월 침맞으러 간만에 외출을 하려는데, 아버지가 집 밖에 나가지 말라며 잡으신다. 전쟁 났다고. 지금 김정은이 로켓 쏘고 있다고. 그놈의 유튜브.
0307 금 크리스 마커의 ‘태양없이’를 보았다. 졸릴 줄 알았는데 정신이 번쩍. 난 여태까지 이 감독이 여자인 줄 알았다.
0308 토 허리가 나을 만하니, 이번엔 감기.
0309 일 휴가 마지막 날. 잠이 안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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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 화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서 그 무엇에 정성을 다할 수 있을까.
0217 월 요즘 꾸준히 하고 있는 거 하나는 일기쓰기. 그리고 봄봄파티 준비. 안부도 나눌겸 전화를 돌리기로 했다.
0222 토 봄봄파티 날. 이 파티가 끝나면 난 6개월의 안식월을 갖는다. 2012년 줌마네 기획팀에 결합한 이후 가장 긴 휴가다.
0223 일 아침에 눈을 뜨고 처음 든 생각. 오늘 뭐하지?
0227 목 동네 구제샵 보물섬에서 바바리를 샀다. 조금 큰 듯해 고민하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요즘은 좀 팔아줘야 해’ 하신다. 옷은 마음에 든다.
0301 토 진짜 오랜만에 수강생 신분이 됐다.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 첫째 날. 마니산 근처 강화도 어느 마을에서 일박 예정.
0302 일 퍼머컬처의 윤리와 디자인 원칙이 마음에 든다. 12개의 퍼머컬처 디자인 원칙 중 첫번째는 ‘관찰하고 상호작용하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들의 지속가능한 서식지를 기획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도 연결이 중요하다.
0304 월 찬우물 농장 5평 밭에 갔다. 생각보다 흙이 나쁘지 않다. 냉이 캐고 겨울난 시금치 몇 뿌리를 수확했다. 그새 타임은 자기영역을 확장했고 스스로 돋아난 고수들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냈다.
0309 일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봤다. 색자의 일인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자기자신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는 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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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프로그램 소식과 줌마네 회원 소식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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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틈틈이 봄봄파티] 후기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월 22일 토요일, 틈틈이에서는 봄봄파티가 열렸는데요. 오프닝은 줌마네 1년 살림살이를 공유하는 정기총회로 시작하였습니다. 2024년에 줌마네가 했던 활동들과 2025년에 계획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1년의 살림살이를 공유하는 시간. 비영리민간단체 전환 2년차로서 줌마네가 오프라인에서 처음 맞이하는 총회였는데요. 정회원 74명 중에 위임 포함 43명이 참여해 주셔서 무사히 총회가 치루어졌답니다. 총회 자료 보러가기
짧고 굵은 총회 뒤엔 따뜻한 양송이수프와 비건빵집의 바게트, 망원시장표 과일로 차려진 새참 시간을 즐기며, 인스타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틈틈이의 지난 2024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솔이 준비하고 경미가 끓여준 유명호텔식 양송이수프는 반짝 추위에 딱 어울리는 인기 메뉴였어요. 소소하게 준비한 오하짱의 플리마켓도 성황리에 열렸답니다.
이날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봄충전 토크였는데요. 줌마네 오랜 멤버부터 틈틈이를 통해 인연을 맺기 시작한 회원분들, 지나가다 궁금해 들른 주민분들까지. 다양한 경로로 모인 이들이 서로의 좌표를 나누고 연결되는 자리였어요.
동네에서 늙어서 죽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성산동 30년차 주민 에이미, 발달장애인 합주단에 협력단원으로 참여하며 플루트를 연주하는 보조개, 파주로 이주해 자신만의 농장을 만들려고 하는 현명, 배우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단편영화 제작 목표를 세우고 있는 오늘, 주민들과 함께 아현동에서 공유 정원을 가꾸고 있는 보리, 구직 활동 중인 쇼와 초연, 안식월에 들어간 짱아,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여백의 시간을 보내는 3층거주자 규진님, 영화음악 일을 시작한 서우님과 쓰리잡을 거쳐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오보, 마을에서 공동육아를 하며 방과후 아이들을 찍고 있는 하수오, 불교철학과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금강경을 읽고 있는 경미, 18년을 함께 살아온 딸네랑 거리두기를 고민하는 럭비공, 번역일을 하며 아이패드로 그림그리기 모임을 꾸리고자 하는 동네 주민분까지. 각자가 선 위치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것, 하려는 것, 관심있는 것을 말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느슨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든든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햇살이 공간에 깊숙히 스며들던 토요일 늦은 오후, 끊이지 않던 이야기꽃과 새참, 작은 선물과 경품추첨과 함께 이날의 봄봄파티는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왠지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틈틈이 시네마] 3월 예술영화전용관 영화번개
3월의 틈틈이 시네마는 예술영화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seoulartcinema에서 만나요.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한 달간 '미래의 여행자:크리스 마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요. 지난 2월 에세이다큐 특강에서도 언급된 크리스 마커의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번에는 특히 크리스 마커가 강하게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여성영화감독, 니콜 베드레스의 영화 <파리 1900>를 특별 상영한다고 해서 같이 보려고 해요. 평소 보기 힘든 귀한 다큐멘터리 영화 함께 보고 후기 나눠요. 참가신청
[틈틈이 시네마] 영화번개+무비토크 관람영화: 파리 1900 (니콜 베드레스, 1946) 일시: 3월 23일 토 오후 2시
장소: 서울아트시네마(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3 경향아트힐 2층)
펨텍톡 6호 입고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에서 발간하는 기술비평진(Zine) 『펨텍톡(FEM TECH TALK)』 6호가 틈틈이에 입고되었어요. 이번 호는 노동, 일, 생산성 등을 주요 키워드로 자본주의 사회의 효율에 관한 강박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착취라는 그림자를 조명하고 있는데요. @womanopentechlab 프로필 링크로 사전 신청하거나 틈틈이에 오셔서 QR로 신청하면 무료 수령 가능합니다. 방문 시 일정은 사전 문의해 주세요.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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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현동에서 꾸준히 공유정원을 돌보고 있는 보리(박신연숙) 회원이 1년 동안 마을 정원을 함께 가꿀 동료들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몸을 움직이며 자연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고, 사계절 정원을 가꾸는 기쁨을 느끼고 싶은 분들, 봄봄정원사로 함께하는 건 어떤가요? 더보기
- 모던가야그머 정민아 회원이 참여한 ‘새노래’ 음반이 나왔어요. 우리 시대의 민중가요를 찾는 프로젝트라고 하는데요. 가야금 선율로 듣는 ‘인터내셔널가’가 궁금하신 분들은 3월 21일 라이브클럽 빵에서 열리는 쇼케이스 공연에 주목해주세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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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님의 소식도 전해주세요
일/작업/일상 뭐든, 함께 나누고 싶은 소식이나 새로운 시도가 있으면 아래 링크로 자랑해주세요. 다음 호 뉴스레터에 공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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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네는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서적 성장과 자립, 연대와 서로돌봄을 위한 비영리 네트워킹 플랫폼입니다. 여성 작업자들이 협업하여 2001년부터 글쓰기, 창작수업, 영상워크숍, 산책학교, 집담회, 전시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하고 있으며, 2023년 6월부터 성산동에 공유작업실 틈틈이를 열어 오솔, 짱아, 하리 세 명의 작업자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줌마네 정기회원이 되면 줌마네와 틈틈이의 모든 프로그램을 회원가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매월 뉴스레터를 통해 줌마네와 회원들의 소식을 공유받고 나의 소식도 전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을 위한 소모임 및 연간 네트워킹 파티에 초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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